[리뷰]아날로그 전설의 부활
본문
아날로그 지형의 변천
1980년대 전후 일본은 턴테이블 산업의 격전지로서 전 세계를 위협했던 나라다. 유럽이나 미국 등과 달리 다이렉트 턴테이블로 중, 저가 시장을 평정했다. 국내에서도 일본의 대중적이고 편의성이 높은 턴테이블이 대거 유통되기도 했고 당시 국내 메이커도 이와 비슷한 턴테이블을 만들어 출시하기도 했다.
테크닉스, 켄우드, 파이오니아나 익스클루시브 그리고 빅터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일본의 대표적인 오디오 메이커들이 과거엔 모두 하나같이 턴테이블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본의 다이렉트 방식 턴테이블은 중, 저가를 넘어 고가의 고정밀 턴테이블로 발전했다. 그 중 마이크로세이키 턴테이블은 그 당시 기술진 일부가 현재 테크다스를 이끌고 있을 정도로 당시 일본의 아날로그 기술이 어느 정도 경지까지 올랐었는지 방증하고 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메이커를 꼽으라면 야마하를 빼놓을 수 없다. 야마하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1980년대 중반 정도까지 수십 종의 턴테이블을 개발해 출시했다. 그 중에서 현재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면 일종의 네오 클래식으로 대접받는 제품군이 있으니 바로 ‘Gigantic and Tremendous’, 즉 우리가 알고 있는 GT 시리즈다. 솔직히 말해 고에츠, 직스부터 시작해 카트리지는 물론 턴테이블에서도 일본은 강국이었다.
야마하 GT-2000(1982년)
세월의 흐름이 무색하리만큼 전 세계 오디오 파일의 소장품으로 사랑받고 있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 저가 제품은 몰라도 상위 제품으로 가면 S/N비, 와우&플러터 등의 수치에서 이미 그 당시에 굉장한 수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도 컬렉터가 생겼을 정도로 당시 발매된 GT-2000 같은 모델은 완성도가 뛰어나다. 아날로그 지형의 변천 속에 유럽과 미국 등으로 이행한 아날로그의 역사 속에서도 굳건한 명품이다.
GT-5000
최근 해외에서 들려오는 아날로그 관련 메이커들의 재건 소식은 약간 걱정되면서도 일단 반갑기 그지없다. 엘피 생산 공장들이 다시 문을 열기도 하며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한 브랜드가 새로운 경영자를 만나 되살아나는 광경은 꿈만 같다. 물론 인수한 회사의 철학과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기술진들의 솜씨에 따라서 품질은 제각각이지만 테크다스 같은 경우는 대단히 성공적인 듯 보인다.
야마하도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사실 야마하의 턴테이블 라인업 재건은 어느 정도는 예견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NS-5000 같은 스피커는 물론이며 C-5000과 M-5000 등을 통해 과거 야마하의 헤리티지 부활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그중 GT 시리즈의 부활은 그들에게 어떤 커다란 의무감으로 다가왔을 것이 자명하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야마하 GT-5000은 ‘Gigantic and Tremendous’라는 라인업 이름처럼 여전히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다. 가로가 546mm, 깊이가 411mm에다가 높이는 223mm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외부 알루미늄 플래터만해도 5kg에 이를 정도로 묵직하다. 요즘 워낙 무거운 하이엔드 턴테이블이 많이 출시되지만 커다란 몸체에서 오는 안정감과 조작감 및 편의성엔 그네들만의 풍미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야마하가 과거 GT 시리즈와 달리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을 버리고 벨트 드라이브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으나 GT-5000은 24극 단상 AC 동기식 모터를 채용해 플래터를 회전시키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모터까지 외부로 노출시키면 좋았겠지만 GT-5000은 내부에 모든 것을 내장했다. 이 모터는 바로 내부 플래터와 벨트로 연결되는 구조다. 내부 플래터는 외부 메인 플래터와 달리 황동을 사용해 두 개 플래터를 다른 소재로 구성했다. 스피커 드라이브 유닛이나 여러 공진 제어 플랫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소재를 사용할 때 진동에 강하다.
톤암으로 시선을 옮기면 멋지게 죽 뻗은 늘씬한 톤암 파이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알루미늄 파이프에 고가의 카본을 입힌 것으로 이 또한 공진에 최대한 강할 것이 당연하다. 이 톤암의 경우 과거 GT 시리즈와 달리 직선형으로 설계한 모습이다. 톤암의 유효 길이는 223mm로 짧은 편인데 기민한 반응과 주행을 통해 민첩하고 정교한 사운드를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GT-5000의 톤암은 조금 아쉽지만 스태틱 방식이며 VTA 조정이 가능하게끔 설계되어 있으며 조정 방식도 매우 쉽다. 아지무스 조정이 되지 않지만 헤드셀 교체가 가능하므로 아지무스 조정이 되는 헤드셀을 사용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몇몇 곳에서 더 관찰되는데 일단 안티 스케이팅 조정 장치를 생략한 것. 다행히 청감상 밸런스 치우침 현상은 포착할 수 없었다.
한편 카트리지 장착과 조정이 매우 편리하다. 일단 오버행이 17mm인데 헤드셀 안쪽에서 스타일러스까지 거리를 52mm로 권장하므로 이에 맞게 조정한 후 장착하면 된다. 참고로 매뉴얼엔 카트리지 오프셋에 관한 내용이 없고 셋업을 위한 얼라인먼트도 제공되지 않는데 전용 장치를 사용해 오프셋을 조정할 것을 권장한다. 또한 최신 카트리지의 경우 대부분이긴 가벼운 편이라 문제가 없으나 좀 더 무거운 카트리지를 사용할 경우를 대비해 무게 추를 소형/대형 두 가지로 제공하므로 카트리지에 맞는 무게 추를 사용하길 바란다.
셋업
GT-5000의 셋업은 매우 간단하며 이는 아날로그 턴테이블을 그 번잡함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따라서 세팅이나 관리에 대한 부담으로 인한 진입장벽은 낮은 편으로 볼 수 있다. 카트리지를 장착하는 것과 VTA 조정 및 침압 세팅 외엔 제법 쉬운 수준이며 뭔가 애매모호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단, 침압은 수평 조정 이후 다이얼 눈금으로 맞추라고 매뉴얼에 적시하고 있지만 가능하면 이런 경험상 침압계를 따고 구입해서 맞추는 것을 권하고 싶다. 턴테이블의 생명인 스피드 정확도는 매우 뛰어난 편이며 와우/플러터도 0.04%로 매우 우수한 턴테이블이다.
이번 시청은 GLV에서 진행했다. 카트리지는 직스의 Ultimate Airy XH 로서 출력이 0.48mV 짜리 저출력 MC 카트리지다. 제조사에서 추천하는 로딩 임피던스는 100옴 이상인데 이를 조정하기 위해 옥타브 포노 모듈을 열어 내부에 장착되어 있는 헤드 앰프의 게인 및 임피던스를 조정했다. 게인은 65dB, 그리고 로딩 임피던스는 125옴에서 훌륭한 사운드를 얻을 수 있었다.
참고로 이번 옥타브 포노 모듈은 특별히 GT-5000을 준비한 것이다. 이유는 GT-5000이 XLR 출력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MC 입력 모듈을 따로 구비했다. 더불어 출력 또한 XLR을 지원하므로 MSB SELECT II DAC와 직결이 가능한 점도 음질적으로 잇점이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RCA 출력을 사용해 옥타브 포노 모듈과 RCA 케이블로 연결했다. 이유는 포노 케이블에 민감하여 트랜스페어런트 RCA 포노케이블을 연결했을 때 더 나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오디오 리서치 프리앰프를 중간에 적용했지만 파워앰프로 최종 낙점한 MSB M500 모노블럭 파워앰프에겐 MSB SELECT II DAC와 직결에서 더 좋을 결과를 이끌어 내주었다. M500의 게인은 미디움, 입력 임피던스는 75옴으로 조정했을 때 SELECT II와 거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완전체가 되었다. 여기에 YG 어쿠스틱스의 Vantage를 연결해 모니터링했음을 밝힌다.
퍼포먼스
정미조 - 개여울
37 YEARS
야마하 GT-5000의 소리는 그들의 앰프 등 여러 라인업에서 목표로 했던 것들과 유사한 점들이 많다. 예를 들어 정미조의 ‘개여울’을 들어보면 보컬이 후방 음향판 중앙에 매우 정확히 맺히며 부동의 위치를 고수한다. 이런 포커싱 능력은 마치 디지털의 그것과 유사할 정도로 치밀한데 마치 정밀도 높은 클럭을 붙였을 때를 연상시킨다. 음상의 위치, 크기 등 모두 한 결같이 정교해서 고전적인 평면적 아날로그 사운드를 연상하면 큰 코 다친다. 그만큼 속도 정밀도가 높다는 반등인데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소리를 들려준다.
Eiji Oue - Symphonic dance
Rachmaninoff: Symphonic Dances, Etudes-tableaux, Vocalise
과거나 현재나 치밀하고 정교한 아날로그 그리고 추억을 더듬게 만드는 중역 위주의 풍만한 아날로그 사운드가 공존하고 있다. GT-5000은 정확히 전자다. 어떤 대역도 부풀거나 왜소한 부분이 없이 매우 균질한 대역 균형감을 뽐낸다. 따라서 디지털 사운드에 익숙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질감 없이 쉽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이지 오우에 지휘,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연주로 라흐마니노프 ‘Symphonic dance’에서 보여주는 커다란 다이내믹스 폭 그리고 아주 쉽게 쏟아내는 타격감은 무척 개운한 느낌을 준다.
Dick Hyman - What Is There To Say?
From The Age Of Swing
이번 시청에서 사용한 직스 카트리지와 옥타브 포노 모듈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필자가 기존에 경험했던 걸 감안하더라도 GT-5000의 스타일은 명확하다. 일단, 전 대역에 걸쳐 각 악기가 펼쳐내는 토널 밸런스는 무척 중립적이고 턴테이블 자체의 착색이 매우 적다. 여러 부분에서 공진을 제어하고 정확한 피치 컨트롤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딕 하이먼의 ‘What is there to say’를 들어보면 두터운 무게감보단 약간 얇고 날렵한 사운드로서 지극히 현대적으로 진화한 아날로그 사운드를 들려준다. S/N비나 와와 플러터 측면에서 무척 높은 성능은 악기들을 냉정하리만큼 명쾌하게 분리해낸다.
Pink Floyd - In The Flesh? ~ Another brick in the wall
The Wall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앨범 중 ‘In the flesh’부터 ‘Another brick in the wall’까지 연속해서 재생해보면 각 곡들의 특징을 명확히 잡아내준다. 어택부터 릴리즈까지 명쾌한 엔벨로프 특성을 표현해주어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저역이 예상보다 뛰어난데 대체로 뭉개지지 쉬운 저역 쪽에서도 어떤 얼룩이나 지저분한 잔상이 제거되어 꽤 단단하고 명징한 소리를 내준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입체감이다. 리스닝 공간을 커다란 사운드 스테이징 능력으로 압도하는 부분에선 이 턴테이블을 선호할 사람들은 분명히 하이엔드 시스템 운영자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총평
GT-5000을 리뷰하면서 아날로그에 대한 여러 단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단 사용자에 대한 배려와 편의성이다. 한낱 턴테이블이라지만 이런 제품 하나에도 일본인들의 무서울 정도의 친절함이 배어 있다. 예를 들어 스피드를 미세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더불어 스트로보스코프와 스트로보 라이트를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스트로보 라이트를 턴테이블 후면에 꼽은 후 불빛을 비추어 보면서 속도를 맞출 수 있다. 요즘 LED나 삼파장 조명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스트로보스코프의 눈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한 배려다.
더불어 45RPM 엘피 같은 경우도 빠른 속도로 진입해주어 사용이 편리했으며 예상외로 포노 케이블과 파워케이블로 인한 음질 변화 폭이 컸다. 참고로 PSC에서 시너지 스틱 리서치로 바꾸었을 때 전원 케이블의 특색이 명확히 구분되었으며 후자가 더 나았다. 포노 케이블은 이미 전술한 것처럼 트랜스페어런트가 좋았다. GT-5000은 일본 턴테이블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성능과 편의성을 가지고 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테스트에 들어갔지만 리뷰가 끝난 후 제품이 다르게 보였을 정도니까 말이다. GT-5000은 과거의 유산으로만 생각했던 전설적 턴테이블 GT-2000의 성공적 부활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Specifications |
---|
Turntable | |
---|---|
Drive Method | Belt drive |
Motor | AC synhronous motor |
Motor Drive | Crystal sine wave |
Rotation Speed | 33-1/3 rpm, 45 rpm |
Rotation Speed Variation | ±0.1% |
Rotation Speed Adjustment | Built-in crystal osc. Adjustment Step: 0.1%, Adjustment Range: ±1.5% |
Wow And Flutter | less than 0.04% |
Platter | [Outer] Machined aluminium (Diameter 35 cm), [Inner] Brass (Diameter 14.3 cm) |
Tonearm | |
---|---|
Tonearm | Static balance straight tonearm |
Effective Arm Length | 223 mm |
Overhang | -17 mm |
Acceptable Cartridge Weight | 13.5-36 g (including headshell) / (25-36 g need sub weight) |
Attached Cartridge | |
---|---|
Head-shell Weight | 14 g (including screws, nuts and wires) |
Audio Specifications | |
---|---|
Output Terminal | Analogue Audio: 2 (XLR balance x 1, RCA unbalance x 1), Strobe: 1 (3.5 mm mini jack) |
General | |
---|---|
Power Consumption | 15 W |
Dimension (W×H×D) | 546 x 221 x 411 mm; 21-1/2” x 8-3/4” x 16-1/8” |
Weight | 26.5 kg; 58.4 l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