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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더 N30을 만나다 - 2부

작성일 2021-01-07 13:00

본문


오렌더 N30 : 코난

컴퓨터를 사용한 음원 재생을 넘어 온라인 스트리밍이 오디오파일의 음악 감상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요즘이다. 시계를 돌려 과거로 올라가면 변곡점이 되었던 시기가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오렌더가 있었다. 애초에 PC로 음악을 재생하는 데 있어 여러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시도 중 오렌더는 원론적인 부분까지 파헤쳤다. 네트워크 플레이어도 다수 나오던 시기였지만 NAS 등 별도의 음원 스토리지 필요 없이 내부에 음원을 저장하는 오렌더의 뮤직서버는 무엇보다 가장 안정적인 라이브러리 구축 기능을 제공했다.

필자 또한 W20은 물론 이젠 단종된 S10 같은 뮤직서버를 테스트해보면서 당시 혁신적인 오렌더 기술을 체감했다. 이후 여러 기능이 추가되고 앱이 업그레이드되는 등 오렌더는 영민하게 시대에 적응해나갔다. 타이달, 코부즈, 벅스 등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빌트인 시키는 등 오렌더는 이제 단순히 뮤직서버를 넘어서는 종합 음원 트랜스포트로서 전 세계 오디오파일의 시스템에서 심장처럼 숨 쉬고 있다.

여러 모델이 쏟아졌다. 오직 뮤직서버로서 기능하는 제품에서 라인업 확장이 필요했을 터. A 시리즈와 ACS 시리즈 등이 오렌더 안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해나갔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오렌더는 뮤직서버로서 기능할 때 가장 오렌더답다. 특히 N10의 존재는 하위 모델에서 업그레이드하고 싶지만 W20까지 점프하기엔 부담스러운 마니아들에게 브릿지 같은 존재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드디어 N20과 N30이 출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운 좋게 이 제품들을 테스트해볼 기회를 얻었다.

새로운 제품을 테스트하는 건 항상 호기심을 자극한다. 게다가 여러 사람과 함께 하면 더 재미있고 혼자서는 깨닫지 못하는 것을 습득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이번 청음 세션은 여러 리뷰어들과 함께해 더욱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시스템이 설치된 곳은 국내 최고 수준의 하이엔드 오디오 시청실을 운영 중인 GLV. YG 어쿠스틱스의 Hailey 2.2를 중심으로 MSB의 Select II DAC 및 MSB M500 모노 블럭 파워앰프가 세팅되어 있었다. 참고로 M500은 8옴 기준 5백 와트, 4옴 기준 1천 와트 출력을 내주며 SN비가 136dB에 이르는 괴물이다. 이전에 테스트해본 적이 있어 무척 익숙한 조합. 하지만 여기에 오렌더 신형 N30 및 N20이 들어가면서 상황은 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왼쪽부터 N30의 리니어 전원부, OCXO 클럭

N30의 경우 리니어 전원부를 채택하고 OCXO 클럭을 사용했다. W20SE와 달리 싱글 AES만 지원하는데 이번엔 특별한 연결 방식을 선택했다. 바로 MSB에 출시된 Pro USB라는 장치다. 이를 통해 N30의 경우 USB 출력 이후 Pro USB를 통해 듀얼 옵티컬로 MSB Select II에 연결되는 방식이 그것. 대개 AES 출력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었던 이전 방식보다 MSB와 조합에선 분명한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동일한 시스템에서 W20SE로 들었던 소리와 이번 N30으로 들어본 소리는 여러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오렌더의 매우 견고하고 빈틈없는 밀도감, 타이트한 아티큘레이션 표현력은 동일하지만 살짝 밝고 경쾌한 풋웍을 보여주었다.


오렌더 N30 : 김편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렌더의 네트워크 뮤직서버를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큼 좋아했던 편은 아니다. 플래그십 W20 SE이 선사한 하이엔드 음질에는 숨이 턱 막혔지만, 다른 게 부족했다. 바로 유저 인터페이스인 앱의 문제였다. 이에 비해 룬(Roon) 앱은 오렌더 앱에 비해 디자인도 앞섰고 읽을거리도 많았다. 시대의 대세는 룬이라고 믿었더랬다.

이러한 편향이 얼마 전 박살 났다. 오렌더가 새로 내놓은 N30을 접하고 나서다. 오렌더 최초의 전원부 분리형 네트워크 뮤직서버인데, 칠흑 같은 SN비와 생생한 음의 촉감이 대단했다. 무엇보다 전원 케이블, USB 케이블, 랜 케이블, 심지어 공유기에 따라 음질이 확확 바뀌는 모습에 전율했다. 룬의 편리한 인터페이스에 취해 그동안 멈췄었던 오디오파일의 피가 다시 끓어올랐다.

새 N30은 서울 송파구 삼전동 GLV 시청실에서 들었다. 동원된 기기는 MSB Select II DAC과 모노 블록 파워앰프 M500, YG어쿠스틱스의 Hailey 2.2 스피커. N30과 Select II DAC은 USB 케이블, Pro USB 모듈, Pro ISL 광 케이블 순으로 연결했다.


시청

Kelly Sweet – Nella Fantasia


조용로

단조로운 Piano 아르페지오로 시작하는 Kelly Sweet의 Nella fantasia는 곡의 중반으로 가면서 화음을 노래하는 보컬이 추가되고 끝부분에 가서는 피아노의 페달링이 깊어지면서 고음역으로 변주를 확장시켜 단조로운 곡에 화려함과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N30이 들려주는 피아노 선율은 자연스러운 잔향과 디테일을 보여주면서도 적절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Piano가 보컬에 앞서 나서지 않아 Kelly Sweet의 달콤한 목소리를 온전히 들려주었다. 보컬 코러스는 Kelly Sweet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위치하고 있으며 빈 공간의 처리가 우수하여 악기와 보컬, 코러스 간의 빈 공간은 더욱 검게 느껴졌다.

음색 자체로는 어둡지 않아서 우아하다기보다는 달콤하게 들리는 것이 이 곡에서는 더 매력적인 부분이다.


코난

켈리 스윗의 ‘Nella fantasia’(16/44.1, flac)를 들어보면 맑고 산뜻한 기운이 전해진다. 정보량 자체는 레퍼런스급으로 소스 음원의 정보를 바닥까지 긁어내 전달해 주는 듯하다. 특히 이 레코딩의 경우 고역으로 올라가면서 에너지양이 상당한데 이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선형적으로 뽑아내 MSB에 전송해 주고 있다. 음색 자체는 여전히 중립적이며 어떤 특정 주파수에 컬러가 입혀지는 느낌은 전혀 없다. 단, 기존에 비해 더 활달하고 싱싱하다는 느낌이 지배적인데 코러스와 전/후 거리감 표현 등 입체적인 무대 표현도 한몫하고 있다고 보인다.


김편

처음부터 카랑카랑한 음이 나온다. ‘선예’라는 단어가 제격일 만큼 또렷하고 입체적이다. 음이 일제히 기립해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것 같다. 4K 화면에 HDR까지 적용한 듯한 상황. 반주 피아노 음은 극도로 선명하고, 무대는 투명 그 자체다. 보컬과 악기 윤곽선에는 색 번짐이 일도 없고, 보컬의 고음은 활짝 열렸다.

시청 내내 혼란스러웠다. 오렌더가 이런 음을 들려준 적이 있었나 싶었다. W20 SE는 N30보다 묵직하지만 경쾌함에서 밀린다. 기기 자체가 음을 즐겁게 내준다는 인상도 N30이 앞선다. 음 알갱이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이다. N10과는 어떤 차이일까, 자문해보았지만 결코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급이 완전히 다르다.


Busch Trio – Dvorak Dumky Piano Trio No.4 in E minor -VI.Lento Maestoso-Lento-Vivace


조용로

오디오에서 재생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어쩌면 편성이 3개 ~ 5개 사이의 실내악이다. 음대역이 다른 악기들로 연주되지만 하나하나의 악기들이 개별적인 선율을 이루고 있어 하나하나의 선율이 자체로도 선명해야 하지만 합주에서의 악기간의 조화를 필수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상급 오디오에서도 실내악에서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협주곡에서의 들려주던 두텁고 날카로운 바이올린 연주는 실내악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에너지 밸런스를 망가트려 산만하고 시끄럽게 들리게 하기도 한다. N30은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로 구성된 이 매력적인 곡의 악기간 밸런스를 온전히 들려주어 합주를 듣는 쾌감을 전달해 준다.

특히 놀라운 것은 빈 공간 처리와 악기의 음색 표현에 있다. 맑고 빠르게 표현하는 N30의 스타일은 악기간의 거리와 펼침이 대단히 우수하고 빈 공간 처리가 뛰어나다. Nella Fantasia에서는 보통 검다고 이야기하는 빈 공간이 보였다면 이 곡을 Critical Listening 모드로 들을 때는 투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아날로그 기기가 아닌 디지털 기기에서 이런 빈 공간을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악기의 음색은 유려하고 보잉시에 활이 현을 긁는 질감이 가감 없이 생생하여 듣는 즐거움이 있다. 이 사이에서 Full Size의 피아노는 타건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지만 과장되지 않게 자리하여 N30이 대단한 밸런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코난

부시 트리오의 드보르작 ‘Dumky’(24/96, Flac) 같은 소편성 실내악에서도 예리하고 냉정하다고 할 만큼 정교한 분해력을 보여주었다. 마치 모든 소리를 가는 실 가닥처럼 분해해 각 악기의 음결을 세밀하게 추적해내는 듯한 인상이다. 경험상 기존 N10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인다. 오렌더가 자칫 딱딱하고 밋밋하게 들릴 소지가 없지 않은데 GLV 세팅에선 단단하면서 뛰어난 세부 묘사로 극복되고 있었다. 특히 이번 ‘Dumky’의 경우 현과 피아노가 무척 예리하게 분리되며 선명하고 상쾌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그려냈다. MSB Pro USB의 공헌도 크다고 판단된다.


김편

놀라운 SN비다. 셀렉트 DAC에 디지털 음원을 공급하는 주체로서 N30은 그야말로 반듯한 음, 마이크로 디테일이 상처받지 않은 음을 내준다. N10과 비교하자면 무대가 좀 더 입체적으로 펼쳐지고, 음의 결을 보다 가까이서 관찰하는 느낌이다. 결국 음의 재생 과정에서 정보 손실이 없다는 것인데 이는 전원부를 별도 섀시로 분리, 전자파 노이즈를 격리시킨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어쨌든 메인 멜로디 뒤로 살포시 깔리는 악기들의 실체가 징그러울 만큼 사실적이다. W20 SE에 비해서는 좀 더 신세대적인 음, 혈기와 투명도가 앞서는 음이다. 하지만 음의 에너지감과 배터리 전원 특유의 잘 다림질한 듯한 음의 감촉에서는 W20 SE 손을 들어주고 싶다.


Marcus Miller – Trip Trap


조용로

많은 악기들이 등장하지만 이 곡에서 중심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Bass 기타와 Drum이다. 다소 톤을 죽여 연주하는 Hihat 드럼이 시종일관 뒷받침을 하고 있으면서 Marcus Miller의 베이스 연주가 심심해지지 않게 하는 양념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N30은 일렉트릭 베이스 기타의 악기 표현을 충실히 해주었다. 베이스 기타는 독주악기로서 표현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악기의 선명도를 살리면 베이스 기타 특유의 질감이 손상되고 무게감이 달라져서 다른 악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Marcus Miller의 Bass 기타는 이 곡에서 몇 개의 이펙터를 변경해가면서 사용하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Bass 기타로서의 본연의 울림을 시종일관 잘 잡아내었다. 비교시에 들은 다른 기기에서는 시작부의 Bass 연주가 잠깐 어쿠스틱 베이스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는데 N30의 가공되지 않은 음색 표현은 디지털 음원 소스로서 최상위권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코난

좀 더 고삐를 당겨 파워와 펀치력, 리듬감 등의 측면에서 N30의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 마커스 밀러의 ‘Trip trap’(16/44.1, Flac)을 재생해보았다. 필자가 들어본 이 곡의 감상 중에선 가장 배경이 조용하고 무척 차분한 시간축 특성을 보여주었다. 자칫 공격적이고 들떠서 산만하게 재생되는 경우가 많은 레코딩인데 이번엔 힘 있게 제어된 사운드다. 마치 단전호흡을 하는 듯 긴장감, 탄력, 펀치력에 청자를 숨죽이게 만든다. 약간만 더 경쾌하게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다른 곡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을 듯. 악기의 표면 질감은 마치 잘 단련된 근육을 보는 듯 단단하면서 굴곡과 패임이 뚜렷했다.

N30은 전체적으로 모든 악기들을 컴퓨터로 분석해서 분해한 뒤 재조립한 듯한 인상을 준다. 분해도, 해상력이 징그러울 정도.


김편

소스 기기 최상단부터 대전류를 마음껏 흘려준다는 인상. 음 어디에서도 야위거나 수척한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다. N10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이 같은 에너지감과 입자감이다. 더 강하고 세밀해진 것이다. 음을 순간적으로 뽑아내는 트랜지언트 능력은 현행 플래그십인 W20 SE보다 오히려 크게 앞선다.

시청곡을 늘려갈수록 N10이나 W20 SE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N30의 시그니처는 풋사과 같은 싱싱함과 경쾌함인 것으로 수렴된다. 건강하고 뚜렷하며 진하면서도 맑은 음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의 변화는 전원부가 그 핵심 키를 쥐고 있음이 분명하다.


Ivan Fischer – L’oiseau de Feu (Trh Firebird), - 2 the inferral Dance


조용로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이는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조곡은 오디오파일에게는 새롭지 않은 곡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다양한 종류의 악기들이 신선하고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총주에서의 무게감과 힘도 분석적으로 함께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소리를 만들 수 있는 곡은 아니다. 대부분 이 곡에서는 ‘힘’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파워와 무게감을 중심으로 듣게 되지만 실제 스트라빈스키의 매력은 힘과 무게감 사이에 숨어있는 ‘투명함’에 있다.

 

N30이 빠른 스피드와 악기간의 분리력에 상당한 실력이 있다는 것은 이 곡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지만 진짜 놀라웠던 것은 Critical Listening 모드였다. 다이나믹스가 한 단계 올라간 듯 팀파니의 무게감과 트럼펫의 뻗침이 선명해졌고, 순간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다양한 관악기와 타악기들은 소름 돋게 하는 생기를 가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총주의 임팩트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즐거움도 작은 것은 아니지만 마이크로 다이나믹스의 증가로 총주 안에 숨은 다양한 악기들의 존재감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비할 데 없는 큰 즐거움이었다. N30은 디지털 음원의 현재 주소가 어디인지 확실히 들려주었다.


코난

이반 피셔 지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스트라빈스키 [불새] 중 ‘Infernal dance’(16/44.1, Flac) 같은 경우에 특히 이러한 면이 두드러졌다. 마치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는 이 곡에서 다이내믹스는 최고조로 올라간다. 모든 악기들이 불꽃 튀듯 격정적인 움직임을 보이는데 그 와중에도 악기들의 위치가 파괴되지 않고 낱낱이 분리되어 들린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크리티컬 리스닝 모드’일 것이다. 이 모드는 나중에 따로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기존에 W20SE에서도 있던 기능이었다. 이번엔 최고 수준의 하이엔드 시스템에서 들어보면서 그 진가를 더욱 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음질적인 부분에선 우선 강/약 세기 표현에 있어서 미시적인 범위의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급상승해 아주 낮은 레벨의 신호들도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 더 다듬어지고 세밀해진 소리지만 절대 꾸민 소리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는 배경이 좀 더 깨끗해지면서 미세 약음들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N30, N20부터는 전면 디스플레이 창이 보다 커졌고 앨범 커버 아트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눈에 거슬리는 경우 크리티컬 리스닝 모드로 바꾸면 자동으로 디스플레이 창이 꺼져버린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 편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김편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중 ‘지옥의 춤’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공기총을 발사한 것처럼 음들이 갑자기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음원 데이터를 DAC에 공급한다는 방증이다. 덕분에 상당히 빠릿빠릿한 음이라는 인상이 계속된다. 맑고 투명한 가운데, 어디 하나 눌러붙거나 뭉치는 구석이 없다.

이 곡을 듣다가 비장의 ‘크리티컬 모드’로 들어봤다. 같은 볼륨인가 싶을 만큼 갑자기 풍압이 늘어나고 윤곽선이 뚜렷해진다. 무대의 스케일도 커지고 연주자들의 동작 또한 시원시원해졌다. 쓸 데 없는 회로의 전원을 차단하면 주로 디테일과 관련된 덕목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다이내믹스쪽도 많이 개선된다. 고속 카메라로 음 하나하나를 보다 오래 바라본다는 느낌도 있다.

다시 원래 모드로 돌아가면, 확실히 세세한 부분을 조금씩 그냥 지나친다는 느낌. 소릿결 또한 상대적으로 덜 다듬은 것 같다. 특히 예민한 귀를 가지신 분들이라면 크리티컬 모드 선택은 필수라고 본다. 또 한 번 크리티컬 모드로 들어보면 보다 정교하고 해상도가 높은 음이 나온다. 리듬감마저 살아나는 것 같다. ‘트립 트랩’을 크리티컬 모드로 들어보면, 연주자의 표정 하나하나가 피어오르고, ‘넬라 판타지아’에서는 보다 클로즈업 화면으로 켈리 스위트를 바라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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